“잘못된 확신에서 벗어나라”

정신과 의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M.스캇펙(Scott Peck) 박사는 말하길, “사람들은 종교의 이름으로 기뻐하며 악을 행한다.”라고 하였다. 필자는 그동안 사역을 하면서 이런 일들을 수없이 보았다. 자신의 확신으로 타인을 경멸하고 죽이는 일들이 역사적으로도 얼마나 많이 자행되어 왔던가.  기독교가 종교의 면모와 권위를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박해하고 반목하지 않았던가. 종교 뿐만 아니라, 정치, 사상, 철학 등 전 분야에 걸쳐 나름대로의 완전한 체계를 세우려고 하였지만, 그러나 오늘날 그런 유토피아는 없다. 단지 갈등과 반목이 난무할 뿐이다. 이 사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인할 수 없다.

갈등이란 서로의 주장이 일치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그 주장이 일치되지 않는 이유로 상대방을 질시하고 비판하며 때로는 종교의 경우 신의 이름으로 기쁨과 확신을 가지고 상대방을 살해하기도 한다. 확신이 우리에게 삶의 질과 역량을 심어주기도 하지만, 어느 경우에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도탄에 빠지게 하는 악의 도구이기도 하다. 우리가 평소에 가지는 종교적 확신이 과연 얼마나 정확하다고 생각하는가. 어느 방향과 사실에 대해 확신을 가지면 가질수록 그 사람은 다른 부분에 대해 적대적이며, 그로 인해 자기가 확신하는 부분마저도 곡해할 소지가 다분히 있다.

확신이란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요, 강조될 부분임에는 틀림없다. 교회에서도 설교시간에 믿음의 확신이란 말을 수없이 듣는다. 성경과 기도,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믿음의 확신 없이 가능하겠는가. 필자는 ‘확신’이란 말 자체를 좋아하고 강조하기도 한다. 확신이 있을수록 신앙인은 마음이 자유롭고 안정되며 용기가 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런데 그 ‘확신’이란 것이 다듬어지지 않거나, 성경의 유기적이고 입체적, 상황적인 맥락과 우리의 삶의 정황 등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잘못된 확신’일 수 있다.

필자는 어느 신학토론회에서 잘못된 확신으로 언쟁이 심해지는 것을 보았다. 서로가 상대방의 잘못된 교리나 인식을 지적하려고 애를 쓰는 그 모습은 마치 여러 맹인들이 코끼리의 다른 부분을 만져보는 그림과 같은 것이었다. 같은 말씀이라도 상황과 인식에 따라 달리 해석되고 적용시켜야 함을 성경 자체가 적시하고 있다(예.고전10:23~31). 교리와 헌법이란 틀이 교회의 질서와 신앙에 많은 도움을 줄찌라도 어느 경우에는 상황에 따라 그 틀을 깨야 할 때도 있다. 틀이 서로 다르다고 해서 신앙이 틀린 것처럼 매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신앙의 확신은 서로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정황을 무시한 잘못된 확신 때문에 하나님과 교회, 사회에 반하는 일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선 자신이 확신하고 있는 바를 다시 점검하라. 물론 그 확신 중에는 어떤 상황에도 변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런 부분들은 변치 않는 믿음으로 간직하되 타인의 확신에 대해 어떻게 다르고 틀린지를 지혜롭게 생각하라. 그리고 변치않는 확신과 상황에 따랄 변할 수 있는 확신을 구별하는 지혜를 가지라. 타인과 여유있게 대화하면서 상대방의 확신을 존중하며 자신이 갖고 있는 확신을 바로 세워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무엇에든지 사랑과 이해, 포용으로 대하라. 그러면 자신이 갖는 확신은 진정한 영적 믿음에 서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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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위기를 극복하라”

부부 간에 갈등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성장배경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출생서열에 따라 배우자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다. 가령 장녀로 자란 아내와 장남으로 성장한 남편이 있을 때 서로 동생 다루듯 배우자를 조종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 밖에 성에 대한 인식, 배우자를 자신의 부모의 이미지로 보려는 습관 등 여러가지 부부 사이에 놓인 갈등의 요소들이 있는 것이다. 타고난 기질(Temper)위에 후천적으로 환경에 의해 조성되는 성격(Character)은 그 사람만이 갖고 있는 특이한 속성이다. 부부가 서로 변할 줄 모르는 성격으로 함께 산다는 것이 갈등 그 자체가 아닌가.

결혼 전 남녀가 서로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은 관능적이며 피상적일 수 밖에 없다. 남녀가 처음에 사랑에 빠지는 것은 에로스적이면서 조건적인 호감 밖에는 안된다. 남녀가 상대방에 호기심을 갖게 되면 시험기를 거치고 애정기를 갖게 된다. 그 후 결혼하면 그 애정기가 평균적으로 오래 가지 않고 권태기에 이르른다. 권태기는 서로의 성격이 부딪치면서 너무나 다른 배우자에게 회의감을 갖게 되는 시기이다. 그 갈등의 폭이 너무 깊으면 이혼으로 이어지지만 권태기를 잘 극복한 부부는 성숙기에 접어드는 것이다. 대부분 이혼하는 부부는 권태기를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부 생활에 권태기가 온다는 것은 부부에 있어서 참으로 힘든 시기이다.

한국의 통계에 의하면 425쌍 중 20%(80~90쌍)가 이미 11개월 전부터 이혼생각을 한다고 한다. 50%(약200쌍)는  3년전 부터이다. 이혼 생각의 심리적 단계를 보면, 1단계가 일방적인 결단을 하고 서로 관심이 없어진다. 2단계는 서로 속이며, 3단계는 절망, 상대방을 포기한다. 이 때 흔히 일과 약물 중독에 빠지기도 한다.  4단계는 옛애인을 찾아가거나 인테넷을 통해 이성을 구하기도 한다.

한국의 이혼율이  1/3이었지만, 요즘은 ½로 치닫고 있다. 결혼생활을 너무 단순한 생각으로 하지는 않는가. 이혼을 자기편의주의에 입각한 이기주의의 산물은 아닌가. 필자는 결혼을 앞둔 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하나의 직업이나 전문업에 종사하기 위해 수년을 배우지 않는가.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전문적인 선지식이 필요한 것이 서로 다른 인격체가 만나는 결혼생활이지 않는가. 배우자를 이해하는 공감의 여유를 배워야 한다. 부부는 결코 같을 수 없다. 그 차이를 인정하라. 남성과 여성은  호르몬이나 뇌의 기능이 약간 다르다는 것도 기억하라.  예를 들면 남성은 뇌의 전두엽에만 언어능력이 있지만, 여성은 전두엽,측두엽,후두엽 모두 언어능력이 있다. 아내와 남편이 말다툼 할 때 아내는 남편의 표현력을 이해하고 대화의 템포를 맞추라. 남편도 아내를 말로 이기지 못할 때 급한 감정과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

부부는 자라오면서 각자 품은 상처들이 있다. 그 상처를 다스리지 않으면 배우자를 공격하는 뜨거운 수증기가 될 수 있다.  자신과 화해하라. 그러면 배우자를 이해하고 화해하게 된다. 부부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감정조절이다. 말과 감정 표현은 그야말로 부부 사이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또한 아무리 부부 사이라 할지라도 기본 예의는 지켜야 한다. 만약 배우자의 거친 행동과 말이 있다면 현상 뒤에 본질을 보듯이, 그 원인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부부 화목은 가정 뿐 아니라, 교회, 사회의 초석이다.  부부가 무촌이라는 것은 영과 혼, 육이 서로 하나요, 배우자가 나 자신이라는 의미이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 배우자를 섬기고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남편과 아내의 도리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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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의존적 사회를 만들려면”

클레어몬트 신학대의 설교학 교수인 캐티블랙(Kathy Black)은 < 치유설교학>이란 그의 저서에서 말하길, “자주적 독립정신의 모토가 강하게 지배하는 미국사회에서는, 사람은 각자가 스스로를 돌봐야 하고 사회나 국가에 의존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이어 말하길,”저변에 깔린 선입관은 지체장애우들이 의존적이며 이들이 사회나 이웃에게 기여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다.”라고 비판한다. 그런데 어디 미국사회 뿐인가. 세상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로 우리 생각 속에는 사회적 약자나 소외된 자들을 도와야 할 대상이라고만 믿고 있다. 

교회나 어느 사회단체를 보라. 장애우들이나 빈곤층들을 돕자는 취지에서 ‘이들과 함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봉사활동을 독려한다. 참으로 훈훈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그 저변에 깔린 전제는 , 어려운 사람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무엇을 협동하고 있다기 보다는 완전히 일방적으로 도움만 베푼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가령 장애우 선교단체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분이 있을 때 그는 “내가 그들을 섬기고 돕고 있다.”라고만 생각하기 쉽다. 자신의 선한 행동을 통해 자신만이 희생한다는 생각은 자기 의가 중심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캐디블랙의 말처럼, 삶을 서로 관계망의 관점에서 볼 때 알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혼자서 완전히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장애우들을 위해 봉사하는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들을 섬기고 도와주되 너도 그들에게 배울 것이 있으니 그게 뭔가를 생각하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위해 봉사하면서도 감사하지 않겠는가.

인간은 서로 어떤 처지에 있던 상호의존적인 존재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창조하셨다. 반드시 기능적인 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영과 혼,육적인 관계가 인간 사이에서 유기적이다. 가정과 교회, 사회가 그렇다. 그릇된 자주적인 독립 사상은 분열과 멸시를 낳는다. 개인주의는 영성에 있어서 가장 악한 것이다. 또한 한가지 주장만 고집하는 것도 다양성을 무시하는 것이며 사상적 편의주의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자신은 국가와 사회, 이웃으로부터 항상 도움을 받는 존재임을 기억하라. 그래야 자신도 남을 돕고 이해하며 화해할 수 있는 이유를 발견한다.

요즘 한국의 정치 문제를 생각해보자. 국론이 분열되고 파당 분쟁이 심각한 것을 누구나 걱정하고 있다. 필자는 나름대로의 정치적 견해를 갖고 있으나 그것이 반드시 옳다거나 상대방의 견해가 반드시 틀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중도의 차원이 아니다. 가령 내 견해를 반대하는 상대가 있을 때 그 상대방이 갖고 있는 견해와 행동이 나의 부족한 면을 채워줄 수 있는 부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것은 말하는 사람의 생각이 완전치 않으며 상대방이 옳은 부분도 함께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상대방을 흑백논리로 판단하지 말고 통전적(Holistic)으로 포용하자는 주장이다.

모든 사람들의 견해와 주장, 조건,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참으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나를 성숙시키는 요소들이 그 곳에 있으며 이웃과 융화하고 상호보완적인 삶 속에서 서로 겸허해질 수 있는, 자유롭고 생각의 풍요로운 삶이 약속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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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으로 이끄는 삶”

성공의 의미를 자신의 욕구를 성취하는 것으로만 해석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꿈을 갖고 성공한다는 것은 궁극적인 목적(Ultimate Goal)을 위한 구체적인 목표(Concrete Target)를 함께 이루려 함이다. 궁극적인 목적이란 자아실현과 의미있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요, 구체적인 목표란 궁극적인 삶을 위해 이루어야 할 이 땅의 필요충분 조건을 말한다. 우리가 두가지 성공을 이루어야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다.

물론 구체적인 목표가 없어도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는 사람들이 있다. 가령 건강치 못하고 빈곤하게 살면서도 타인에게 귀감이 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성공은 피치못할 열악한 환경이나 의를 행하기에 오는 여러가지 희생과 손해를 감수하면서 도리와 미덕을 지키는 삶일게다.  

성공, 즉 ‘SUCCESS’는 이렇게 풀이해 볼 수 있다. S(Sense of Direction), U(Understanding), C(Courage), C(Charity), E(Esteem), S(Self-Confidence),S(Self-Acceptance).

첫째,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이룰 목표를 분명히 세워야 한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현재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분간하라. 또한 자신의 결점을 늘 생각할 줄 모르면 목표가 없어지고 허무하게 된다.  

둘째,목표를 세울 때 방향감각을 갖고 자신의 문제와 타인의 문제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어려운 일이 다가와도 피하지 말고 용기있게 대처해나가라. 싫은 사람일수록 가까이 하라.

넷째,관용을 베풀라. 어느 누구를 만나든지 그 사람을 중요한 사람처럼 대접하라. 그러면 그 사람이 나를 존중하게 될 것이다.

다섯째,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자신에 대한  불신이다. 자신을 불신하면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가 모두 깨져버린다. 자신에 대해 존중감을 가지라.

여섯째,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성공한 데서 자신감이 생기는 법이니 작은 성공도 큰 성공처럼 생각하라.

오랄 로버츠 목사는 말하길, “자신감을 가지기 위해서는 과거의 성공이 계속 떠오르게 하라.”라고 하였다. 일곱번째는 자신을 용납하는 것이다. 자신의 단점과 상처에 대해 이해해 주어라. 자신에게 말하라. “너는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자신과 화해해야 한다. 약점을 감추거나 타인의 눈치를 보려고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가 없다. 실수가 많아도 당연하다고 인정하라.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창조적 메카니즘, 즉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뇌와 신경조직을 주셨다. 이 조직들은 목표가 있고 자신감이 있는 사람에게만 창조적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다. 자신감을 갖게 되면 세포 속의 전자 회전수가 보통 때에 비해 수십,수백배가 되며 수용체와 접합체의 결합이 빠른 속도로 결합되어 기억력, 창의력 등이 발달하게 된다.

무엇보다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하라. 의미요법 연구가 빅터 프랭클은 말하길, “사람들이 고난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고난의 의미를 몰라서 죽는다.”라고 하였다. 삶의 의미란 우리의 생명과도 같다.  의미를 가질 때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모든 고난을 견디게 하며 쉽게 역경을 피하려 하지 않는다. 의미는 우리를 삶의 성공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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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평안을 주는 피아노 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