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동조현상을 분별하라”

요즘 사회적 동조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유행이나 호감, 정치, 직업, 취미 등 타인이나 다수의 행동과 사고 방향이 한 개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런 현상은 정확한 사고의 판단이나 주관적 해석, 개성을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라, 심리적 동조현상에 의한 것이다. 여기서 필자가 말하는 심리적 동조현상이란 다소 부정적인 표현으로 자신만의 신념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그릇된 사회적 심리에 따라 동화되는 것을 말한다. 

사회적 동조현상은 비슷한 나이나 학벌, 같은 지역에서 두드러진다. 여기에는 감정, 잇권, 분위기가 한 몫을 한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반응이 그릇된 것이라면 냉철한 판단으로 회피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오늘날 안타까운 사실이다. 미국 어느 기관에서 어른 10명으로 실험하였다. 1명은 모르게 9명에게 입을 맞추게 하였는데, 내용은 L.A에서 뉴욕보다 시카고가 더 멀다는 것이었다. 10명을 둘러앉게 한 다음에 인도자가 질문을 던졌다. “L.A에서 뉴욕과 시카고 중 어디가 더 머냐?”라고 했더니 사전에 약속한 대로 9명은 시카고가 더 멀다고 하였다. 놀라운 것은 나머지 1명도 엉겁결에 “시카고가 더 멀다.”고 하였다.

필자가 사는 지역에도 보면, “어느 교회가 좋다더라.”라고 소문이 나면 그 교회가 갑자기 양적으로 부흥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한국인들의 사회적 동조현상은 어느 민족보다 심하다는 것을 느낀다.  원인이야 있겠지만 하나의 그 민족의 정서와 습성(Ethos)이 아니겠는가. 어떤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인 판단보다는 사상적 편의주의에 입각한 감정과 단순함이 잘못된 개인과 집단의 행동을 낳는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은 집단을 이루어 때로 폭력을 불사하기도 하는데 급기야 그들의 주장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믿으며 타협의 여지를 전혀 남기지 않는다. 감정에 따라 인지적인 것도 바뀌기 때문이다. 일관성을 유지하려고 하며 자기들과 행동을 같이 하는 그룹들과 함께 끊이지 않는 적대세력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필자가 언급한 것처럼, 흑백논리는 인간의 사고를 단순화시키며 감정 또한 격하게 만든다. 타협과 대화를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게 하고 전혀 이성적이거나 논리적이지도 못하다. 우리 주변으로 밀물처럼 밀려오는 수많은 소식들이 있다. 특히 정치 문제가 그것이다. 자신이 정치색을 갖고 있다고 할 때, 과연 그 사상이 정확한 정보와 판단에 의한 것인가.  우리가 듣고 경험하는 모든 사건들과 사람들에 대해 과연 그 사실 그대로 내가 해석하고 판단하는가. 그 사실보다는 나의 경험과 편견, 평소 갖고 있는 감정과 상처에 의한, 편협되고 왜곡된 인식은 아닌가.

분별없는 사회적 동조현상에 자신이 포함되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생각이 오류가 있을 수 있슴을 인지하라. 또한 자신이 옹호하는 그룹과 반대하는 그룹 모두 장단점이 있슴을 항상 생각하라. 모든 해석과 주장에는 늘 모순이 도사려 있다. 인간은 어차피 모순의 존재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단순히 어느 쪽이 절대로 옳다라고 주장할 수 없다. 우리에겐 화해라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이 다를지라도 화해할 줄 아는 사회는 타협이 있고 대화가 가능하다. 아무리 나의 의견을 반대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호감을 가지라. 그 호감이란 상대방이 나보다 나은 면이 있슴을 인정하는 겸허한 자세에서 온다. 방향없이 흔들리는 잘못된 사회적 동조현상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겸손하고 포용성있는, 자유로운 생각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과거도 바꿀 수 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S.Freud)는 말하길, “일반적 슬픔은 의식적이며 슬픔의 작용이 완결된 뒤, 자아는 다시 자유롭게 되고 새로운 대상에게 리비도(Livido:정신적,본능의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 가능한데, 우울증은 무의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상실했다는 사실만 알 뿐, 그 대상을 알지 못하기에 인식적 오류에 빠진다. 우울증 환자가 표출하는 슬픔의 억제는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나타난다.”라고 하였다.

우울증으로 인한 비정상적인 행동은 대체로 가정불화와 신앙생활 제약을 유발하며 모든 관계형성에 부작용을 낳는다. 자신의 내부세계를 억누르며 타인과의 접촉을 꺼리고 만성적인 공허감으로 인해 경계선 인격장애로도 나타난다. 경계선 인격장애란 이유없이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정서,행동,대인관계가 매우 불안정한 정신적 병리현상이다. 신경증 환자는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지만, 정신증 환자는 자신의 문제를 모를 수 있다.

많은 경우에 우울증 환자는 그 이유를 가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대인관계에 있어서 의식, 무의식에 잠재해 있는 경험의 인자들이다. 대인관계에서 선한 대상(Good Object)의 경험이 많은 경우에는 정신병리학적 증상이 그만큼 축소되며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을 포용하고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되지만 , 음가적 대상(Bad Object)의 경험이 많았던 경우에는 어떤 상황을 만나더라도 무의식 속에 모든 대상과 환경을 불신하고 자신을 억압하는 요인이 작용하여  심적 기피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 음가적 대상은 부모에서 시작될 수 있으며 학교와 사회에서 점차 늘어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음가적 대상의 경험이 많은 사람은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자신에 대한 억압을 해소하려는 증상을 보이기에 대인관계가 좋아질 리 없다는 것이다. 대인관계에 갈등이 많아지면 우울증이 여지 없이 찾아온다. 부부사이와 가족도 예외는 없다. 우울증은 사실 모든 정신병적 증상의 종합적 증세로서 그 뿌리가 심각한, 영적인 과제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우선 자신의 우울증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탐색해 봄이 좋을 것이다. 다른 원인이 아닌, 과거에 경험했던 음가적 대상들이라면, 우선 그 대상들에 대한 인식 변화와 인지 치료가 절실하다. 가령, 그 대상이 부모님이나 어떤 환경들이었다면 그 사실에 대해 재해석과 의미를 두는 것이다.  과거의 고통이 나에게 의미있는 사건으로 다가오고 긍정적으로 평가되기 위해서는 부모에 대한 이해를 가지도록 하라. 환경에 대해서도 내게 필요한 여건이었슴을 인지하라. 자신은 그 여건을 잘 견뎌왔고, 하나님이 자신을 그 때 보고 계셨으며 상처입은 치유자로 쓰시려는 목적이 있었슴을 믿으라.

‘과거도 바꿀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아무리 아픈 상처라 할지라도 보는 의미와 해석에 따라 내게 새로운 사건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뜻이지 않는가. 우리는 과거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오히려 아픈 과거는 나를 성숙시키고 인생의 참 의미를 되새기는 자료로 삼을 수 있다. 모든 일은 그냥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나 상황을 만났든, 나를 위한 양약임을 늘 상고하라. 그 생각이 우리의 믿음이 될 것이며 건강한 인간관계를 형성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