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뿌리를 제거하라

필자가 그동안 삶을 살면서 제일 힘들다고 느낀 것은 역시 사람과의 관계가 아닌가 싶다. 사람마다 특출나면서도 독특한 부분들을 몇가지 이상씩은 가지고 있다. 장점과 단점이 있겠지만, 특히 단점에 대한 면들이 사람 사이에 갈등을 일으킨다. 가족 관계에서도 그 갈등은 어김없이 나타난다. 부부가 생각이 다르고 부딪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회 속에서의 사람 관계는 오죽하랴. 단지 견해 차이나 생각의 다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모난 성격과 상식 밖의 돌출된 말과 행동을 말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다스릴 줄 안다. 상대방의 생각과 상황을 고려하며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여 말과 행동을 잘 나타내지만 어떤 이들은 내면에서 파생된 말과 행동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그 내면이란 무의식을 말한다. 무의식은 의식적인 행동을 지배한다. 평소에 우리가 행동하고 말하는 것의 80%가 무의식에서 온다고 하지 않는가. 그 무의식에 형성된 여러가지 뿌리가 있다. 그 뿌리는 어렸을 때부터 경험한 상처라는 씨앗에서 나온다. 즉 실패와 슬픈 환경에서 오는 씨앗이다. 여기에 열등감, 자괴감 등이 뒤섞여 있다.

그 사람의 타고난 기질과 연합하여 조성되는 성격은 결국 무의식에 자리잡고 있기에 부정적인 무의식은 곧 그 사람의 모난 성격이 되고 만다. 이것이 쓴뿌리이다. 사람의 쓴뿌리는 그 사람의 운명을 그르치게 하는데 평생을 쓴뿌리를 지닌채 산다면 그 사람의 건강과 대인관계 회복은 요원할 것이며 결국 신앙 생활에도 막대한 폐해가 발생한다. 어떻게 쓴뿌리를 제거할 것인가. 필자는 이에 대해 여러방면으로 연구해 왔고 경험해 왔다. 필자도 쓴뿌리가 있기에 목회나 대인관계에서 여간 불편을 느낀 것이 아니다. 그러나 관심을 갖고 노력하면 어느정도 쓴뿌리를 제거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자신과 사람들의 행동과 말 자체에만 귀 기울이면 안된다. 현상 뒤에는 본질이 있슴을 알라. 다시 말해, 왜 나 자신이나 상대방이 그런 말을 하고 행동을 했는지 그 원인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많은 경우에 그 사람의 잘못된 행동의 원인은 그 사람의 쓴뿌리이다. 즉 그 사람 자신의 문제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이다.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 속에 있는 상처에 의해 자신이 지배받고 있다는 것만 평소에 알아도 조금씩 개선해 나갈 수 있다. 먼저 상처로 얼룩진 자신을 이해하고 화목하라. 잘 견디어 온 자신에 대해 칭찬해주고 자신감을 가지라. 상처와 응어리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것을 재해석하는 일은 가능하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연단이며 내게 필요했던, 그래서 신앙을 갖기 위한 과정의 결과였슴을 인지하는 훈련을 가지라. 의식적인 노력이 무의식을 바꿀 수 있다.

무의식이 의식을 지배한다면, 반대로 의식이 무의식을 지배할 수 있다. 관건은 내 자신이 어느 중심에 서 있느냐이다. 이것은 신앙을 가질 때만이 가능하다. 상처의 뿌리는 남아있지만, 그 뿌리를 풍성한 열매를 맺는 건강한 뿌리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말과 행동을 조심스럽게 하며 자신을 컨트롤할 줄 알고, 상대방도 이해하게 되어 상대방을 용서하고 포용하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신앙이란 나자신을 먼저 다스리는데서 나오지 않는가. 자신을 치유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시간을 투자하라. 모든 일보다 자신의 회복과 삶의 의미를 두고 사는데에 인생의 목적을 두라. 그것이 후회없는 삶이 아니던가. 상담:206 992 9625

어린아이의 마음

사람들은 대체로 코메디 방송을 좋아한다. 개그맨들의 어린아이같고 익살스런 모습에 한바탕이라도 웃고 나면 마음의 응어리가 잠시라도 녹아내리기 때문일까. 인간은 어린아이로 살다가 어른이 되면서 천진난만하고 꾸밈없는 모습이 사라져가고 꾸미고 눈치보며 거짓된 ‘페르조나(가면)’에 의지해 사회를 적응해가려고 한다. 행동심리학에서 행동으로 인한 심리적 변화를 말하듯이,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환경에 따라 행동을 하므로써 마음까지도 페르조나와 동화되고 만다. 그 결과 나이가 들수록 심령이 메마르고 감성이 무디며 표리부동한 자세로 일관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인간으로서의 매력이 사라지는 것이다.

꾸미는 인격은 자신을 억압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쇠고랑에 채우고 자기 표현을 못하게 한다. 참 자기가 되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소심하고 겁이 많으며 적개심과 신경이 예민해질 수 밖에 없다. 있는 그대로를 표현 못하기에 성급해지며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들다. 지나치게 조심하며 심하게 자신을 비판한다. 예민한 사람은 실패의 경험을 많이 한다. 영국의 조사기관에서 연구한 ‘목적진전’이란 말이 있다. 예를 들면, 바늘 귀에 실을 꽂을 때 손이 떨리는 현상인데, 떨어져 있을 때는 떨리지 않는 것이다. 왜 말을 더듬는가? 실수 안할려고 하기 때문이다. 목적을 이루려고 지나치게 신경쓰면 떨리고 능률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이 모든 심리는 완벽주의와 꾸밈에서 온다.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져야 건강해질 수 있다. 예수님도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설파하였다. 어린아이는 속임수가 없으며 천박함이나 위선이 없다. 순수한 감정과 행동을 나타낸다. 실수를 해도 개의치 않는다. 여기에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인간의 참모습이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며, 거짓모습은 꾸민 모습아닌가. 그러기에 어른이 되면서 페르조나를 가끔씩 벗고 참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 그 참된 모습이란 자신의 내면 속에 있는 상처나 자아발견의 욕구 등이다. 현실을 지혜롭게 대처해나가면서 자신의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을 찾고 자유와 환의를 느끼면 창의력과 에너지가 배로 증가되는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놀이문화이다. 놀 줄 아는 사람이 건강하다. 필자는 며칠전 교인들과 함께 윷놀이를 하였다. 그 때 어린아이처럼 웃고 함성도 질렀다. 목사라는 타이틀이 내면의 욕구를 억제하게 할 수 있겠는가. 교인들을 어느 선에서는 전혀 의식할 이유가 없다. 점잖치 못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나의 교인들은 알고 있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며 참된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을……. 영성은 바로 여기서부터 나온다.

필자가 지난 컬럼에서도 언급했듯이, 영성이란 어린아이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꾸밈이나 페르조나가 아니다. 어린아이처럼 실수를 두려워 말라. 타인을 너무 의식하여 자신을 늘 비판하고 억압하는 삶에서 벗어나라. 때로는 말을 크게 하고 주변사람들의 말에 상처받지 않는 훈련을 스스로 하라. 자신의 신경계를 이완시키고 가끔씩 무디어져서 자신을 사랑하고 보호하라. 단 하루를 살더라도 기쁘고 평안해야 하지 않겠는가. 상담:206 992 9625